
살인과 복수에 대한 김지운 감독의 강렬한 변주
니체 ‘선악의 저편’ 영향…세 가지 엔딩 에피소드
영화 ‘악마를 보았다’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든다는 출발점 때문일까. 김지훈 감독은 언제나 장르에 대한 매혹이 그 무엇보다 앞 자리에 오고는 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악마를 보았다’는 장르보다 인물의 힘, 복수의 이름으로 고통을 주고받는 두 남자의 감정과 행위를 중심에 놓고 있는 영화다.
김 감독은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 대해 “활화산 같은 광기와 얼음장 같은 광기가 충돌할 때 나오는 원시적인 에너지를, 감독이기 이전에 팬의 입장에서, 불덩어리 같은 배우 최민식과 그 세밀한 표현력의 끝이 어디일지 궁금한 배우 이병헌의 불꽃 튀는 대결을 통해 보고 싶었다” 고 고백한다.
‘악마를 보았다’는 제목 그대로 평범하게 살던 한 남자가 뜻하지 않게 악마 같은 놈에게 약혼녀를 살해당한 후, 그 고통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려는 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고통분담극이고 악마와 사투를 벌인다는 점에서는 종교극이고 한 남자의 뼈저린 고통이라는 점에서 수난극이며, 그 처절한 응징의 방식이 정당한 것이냐고 질문하는 도덕극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의 영정 앞에서 복수를 다짐한 한 남자의 순애보적 애정극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김 감독은 “두 배우가 현장에서 만나 빚어낸 마법, 극단적인 캐릭터 연기를 관객들이 즐겁게 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또한, 누구나 꿈꾸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 하는 잔인하고 강렬한 복수를 실제로 주고 받는 두 남자를 보며 오락영화의 통쾌함과 함께, “‘왜 누군가는 악마로 살아가고 누군가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는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인가?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같은 질문을 한번쯤 떠올려 볼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악마를 보았다’의 복수는 본능적이다. 쫓고 쫓기는 공방전이라는 틀은 같지만 기존의 복수극들에서 허용되어있었던 영화적 표현 수위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뼛속 깊이, 죽은 뒤에도 고통스러웠으면 좋겠다고 바랄 만큼 큰 복수심이 동기이기에 강도 높은 폭력이 스크린을 수놓는다. 하지만 그 폭력이 불편함으로 직결되지 않는 것은, 복수의 원인이 되는 사건에 대한 인물의 감정 표현 또한 그 어떤 영화보다도 솔직하고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에만 주목하고 막상 그 끝은 흐지부지 했던 영화들과는 다르게 인물의 감정이 쌓이고 쌓여 터져 나올 때, 폭력과 함께 묘사되는 처절한 응징은 큰 카타르시스로 다가온다. 타협 없이 극한까지 몰고 가는 응징은 한국 영화의 표현 영역, 그 장을 또 한 뼘 넓히는 동시에 다시는 보지 못 할 강렬하고 새로운 스크린 체험을 약속한다.
◇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세 남자의 만남
지난 11일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언론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된 영화 ‘악마를 보았다’는 감정선은 이병헌을, 동선은 예측불허의 최민식을 따라가게 함으로써 숨막히는 복수전을 선보였다.
이날 처음으로 완성된 영화를 본 이병헌은 “감독님과 최민식 선배님 셋이 영화를 본 뒤 대기실에 5분 정도 있었는데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최민식은 “어처구니가 없다”고 짧게 덧붙이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김 감독은 한가지 장르로 대표되지 않는 감독이다. 그는 총 5편의 장편 영화 그리고 4편의 단편영화까지 단 한번도 동일한 장르의 작품을 만든 적이 없다. 코미디, 호러, 느와르, 웨스턴 등 매번 새로운 영역에 발을 내딛었으며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관객들을 흥분시켜왔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악마를 보았다’를 통해 스릴러 영화를 선보인다.
그의 장편 데뷔작 ‘조용한 가족’ 이후 12년 만의 반가운 재회를 하는 최민식과 ‘달콤한 인생’, ‘놈놈놈’ 에 이어 그의 영화에 세 번째로 출연, 김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이병헌, 이름만으로도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두 배우가 살인과 복수라는 메인 테마를 연기한다. ‘악마를 보았다’는 스릴러 영화의 고유한 문법을 김지운 감독이 어떻게 변주해서 내어놓을지, 뜨거운 세 남자의 시너지가 어떻게 발현될지, 새롭고 강렬한 스릴러에 대한 기대감을 자극해 왔다.
김 감독의 장르 도전과 그만의 스타일은 늘 관객들을 새로운 영화와 만나게 했다. 그의 복수극 또한 통념과 상식을 뛰어 넘는다. 피해자를 찾아내고 죽이고 끝내는 기존의 도식과는 달리, ‘악마를 보았다’의 복수는 ‘내가 만약 피해자라면 어떻게 복수를 할까?’ 라는 가정에서 출발하여 무섭도록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그려진다. 영화는 범인을 찾는 과정의 미스터리보다 범인을 상대하는, 처절한 응징의 과정에 집중한다. 사실적이고 잔인한 영화 속의 폭력은 복수라는 감정에 대한 가장 적나라하고 솔직한 묘사다.
이날 김 감독은 ‘악마를 보았다’의 원 제목이 ‘아열대의 밤’이었다는 고백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는 “겨울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어야 했기에 ‘아열대’란 말이 어울리지 않아 변경하게 됐다”며 “복수하는 사람의 파멸과 정체성 등 감정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려 했다”고 제목에 대한 에피소드를 풀어냈다.
김 감독이 시나리오에 영향을 받은 작품은 니체의 ‘선악의 저편’. 그는 “괴물을 쫓는 자는 자신이 괴물이 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에서 토대를 마련해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갔다. 실제, 영화 속 최민식과 그의 친구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 이와 유사한 대사가 등장한다. 괴물이 될 수 밖에 없는 부조리한 아이러니에서 강렬함과 솔직함, 그리고 힘을 영화 속에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김 감독은 “만나지 말았어야 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악마적 존재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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